오라클 엔지니어드 시스템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에 ‘애플’을 꿈꾸는 회사가 있다. 오라클이다. 오라클은 2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SW 개발에만 집중한 순수 SW 기업이었다. IBM 등 하드웨어 기반 기업들이 SW 시장에 들어서겠다고 나설 때, 오히려 오라클은 기존 SW 사업 부문을 지키면서 솔루션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그런 오라클이 변한건 2009년부터다. 당시 오라클은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인수하면서 엑사데이터, 엑사로직 등 HW와 SW를 결합한 어플라이언스 제품들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애플처럼 자사 SW에 최적화된 하드웨어를 전달해 고객들에게 기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라클은 애플이 iOS가 완벽하게 호환되는 모바일 제품을 애플이 동시에 만들어 공급하기 때문에 아이폰, 아이패드, 아이팟 등의 애플 제품이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는다고 여겼다. 비즈니스 SW도 이와 같은 전략을 취하면 더 좋지 않을까. 사실상 메인프레임의 부활을 꿈꾼 것이다.
그렇다고 오라클이 처음부터 어플라이언스 전략을 들고 나왔던 것은 아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대다수의 기업들은 ‘베스트 오브 브리드’ 전략을 추구했다. 마음에 드는 솔루션을 구입해 원하는 HW와 결합해 사용했다.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부분의 최강자인 오라클도 HP의 서버 등과 협력하며 상생의 관계를 유지했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이들의 관계는 오라클이 썬을 인수하면서, 마크 허드 전 HP 최고경영자가 성추문에 휩싸여 불명예 퇴직하면서 끝났다. 오라클과 HP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이후 오라클은 하드웨어 제품 개발에 속도를 가했다. 썬의 기술과 오라클의 솔루션을 결합해 SW와 HW를 최적화해 결합한 데이터베이스 일체형 통합 솔루션인 ‘엑사데이터’를 내놨다.
래리 앨리슨 오라클 CEO는 IBM을 공공연히 거론하며 “자사 HW 플랫폼과 데이터베이스 SW 솔루션을 결합한 어플라이언스 제품을 계속해서 출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 오라클은 미들웨어 부분에서 자사 SW와 HW를 결합한 ‘엑사로직’을 출시했다.
오라클의 이런 어플라이언스 움직임은 다른 경쟁사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IBM, HP, SAP도 어플라이언스 제품을 출시했다. 관련업계는 이제 ‘베스트 오브 브리드’의 시대는 가고 어플라이언스의 시대가 왔다고 주목했다.
이제 오라클은 기존 어플라이언스에서 한층 발전한 전략을 내놨다. 10월2일(현지기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오라클 오픈월드 2011’에서 래리 최고경영자는 ‘엔지니어드 시스템’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시장을 선도해나가겠다고 발표했다.
강신영 한국 오라클 퓨전미들웨어 사업총괄 전무(사진)도 블로터닷넷과의 인터뷰에서 “오라클 내부에서 어플라이언스라는 개념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라며 “대신 ‘엔지니어드 시스템’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자사 HW와 SW를 결합해 제공하는 어플라이언스 전략에서 한단계 더 나아가 다른 솔루션들과도 결합했을 때 최적화된 기능을 제공하는 제품을 고객들에게 제공하겠다는 뜻이다.
어플라이언스 전략이 대두되면서 고객들은 제품 제공업체들에 묶여 빠져나갈 수 없게 되는 ‘락인 효과’에 걸릴까 걱정했다. ‘베스트 오브 브리드’ 전략 때는 고객이 제품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어플라이언스 흐름이 대세가 되면 선택의 폭이 좁아질지는 않을까 우려했다.
고객들의 이런 걱정을 알아차린 오라클은 어플라이언스 흐름을 다른 면에서 접근하기 시작했다. 어플라이언스의 의미가 고객에게 SW와 HW를 한꺼번에 구매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엔지니어드 시스템’이라는 개념을 통해 자사 SW와 함께 사용하면 더욱 편리지만 다른 제품과 함께 사용해도 문제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기존 어플라이언스 전략에서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다. 오라클의 엑사데이터와 엑사로직은 자사 솔루션에도 최적화돼 있지만, 사이베이스 등 경쟁사 제품과 함께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고 오라클은 주장한다.
강신영 전무는 “사실 엔지니어드 시스템의 가장 큰 매력은 고객이 빠른 시간 안에 제품을 구축해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라며 “오히려 고객이 부담을 느껴서 제품 설치를 미루는게 되면 기업에게 그게 더 손해가 되기 때문에 관점을 달리해 접근했다”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오라클의 고객 배려가 보이는 전략이 또 있다. 바로 ‘퓨전’ 전략이다.
오라클은 인터넷상에서 법무팀이 가장 큰 효력을 발휘하는 회사로 회자될 만큼 유난히 인수합병을 많이 하는 회사다. BEA, 썬, 시벨, 피플소프트, JD에드워드 등 이름 있는 SW회사란 회사는 거의 오라클이 인수했다. 어떻게 보면 욕심이 지나치다 할 정도다.
이렇게 인수한 기업들은 오라클은 그냥 두지 않았다. 자사 솔루션의 사업군으로 자리잡아 별도로 솔루션 개발을 할 수 있게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일반적으로 회사가 인수합병을 한 뒤 자사 제품들과 어떻게 통합시킬까 고민하면서 인수 흔적을 지우기 바쁜데 반해, 오라클은 인수한 사업군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인수전 제품을 사용했던 고객들이 낯설어할 것을 배려한 전략이다. 이들 인수 기업들은 오라클에서 하나의 사업군으로 자리잡아 제품 개발과 업그레이드에 나섰다.
그리고 오라클은 이들을 묶어 하나의 제품으로 발전시키겠다는 ‘퓨전’ 전략을 내세웠다. 조금씩 단계별로 업그레이드를 진행하가면서 궁극적으로 오라클의 솔루션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작업은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린다. 오라클이 인수한 기업이 굉장히 많을 뿐만 아니라, 이들 제품의 특성이 각양각색이기 때문에 하나로 뭉치는데는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강신영 전무는 “퓨전 전략이 지금 당장은 매우 느리고 답답해 보일지 모르지만, 미래를 생각했을 때 가장 합리적인 전략”이라며 “경쟁사들이 인수 합병 후 인수 기업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과 달리, 오라클은 인수 후 그 기업의 장점을 살려 개발시킨 뒤 오라클 제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제공한다”라고 설명했다.
지금 당장은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퓨전 전략이지만, 궁금적으로 하나의 제품으로 안전하게 통합됐을 때의 기대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오픈월드에서도 ‘퓨전 전략’이 중요시하게 거론됐다. 래리 회장은 “오라클은 퓨전 전략을 포기하지 않았다”라며 “앞으로도 인수 합병을 통해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박차를 가할 것이며, 퓨전 전략을 통해 오라클의 제품군들을 통합할 수 있는 솔루션들을 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디 가더라도 멀리 내다보겠다는 오라클의 의지가 보이는 SW전략이다.
출처 - http://www.bloter.net/archives/78012